스웨덴식 데스 클리닝 Swedish Death Cleaning 이란, 말 그대로 사는 동안 처박아 두거나 쌓아둔 잡동사니를 살아 생전에, 자기 스스로 치우는 것을 말한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혹은 내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모습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인사이트는 ‘최소노력의 법칙 – 그렉 맥커운 지음’ 중 챕터 6 ‘정의내리기’에 소개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불치병의 시한부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 브로니 웨어가 쓴 책,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과 함께 맞닿았다.
나의 물건들, 나의 흔적들. 그것들을 정리해 놓는다면 어느 정도 홀가분하게 끝내거나, 또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물건을 완료된 상태, 혹은 완결된 상태로 하는 것이 내 최근의 최대 미션이기도 하다.
‘최소노력의 법칙’ 핵심, 스웨덴식 데스 클리닝
업무나 목표, 계획 등 어떤 것이든 완료된 상태를 확인하자는 취지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평소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미완료된 상태로 봉합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오래전 내가 사용했던 프랭클린 플래너의 핵심가치이기도 했다.
당시의 시대적 가치는 시간 관리였다. 물론 지금의 시대에도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지는 않는 듯 하다. 우선순위에 의해 인생을 살다 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든다. 나는 그것으로 많은 혜택 속에 상당 부분 스트레스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아마도 ‘스트레스는 주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받는 사람의 문제’라는 문장을 받아들이고나서부터였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완료하기’란 매우 중요한 인사이트로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나에게 인사이트를 준다.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눈떠보니 선진국’의 저자 박태웅 소장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조건’에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서서히 이해가 되었으며, 이제는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 어떤 사안이나, 교류하는 사람들, 혹은 가족들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그 상사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의 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을 모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일만 하는 사람인지, 지시를 전혀 못하는 사람인지, 승진만을 목표하는 집념의 인간인지, 술을 매우 좋아하는 낙천적인 사람인지, 결혼을 하지 못한 노총각인지 등 우리는 여러 정보의 조합으로 어떤 사람에 대해 정의를 한다.
“그 사람 어때?”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응 그 사람은 OO한 사람이야” 라고 말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완료했다’는 것은 더 이상 신경 쓰고 있지 않은 상태
정의를 하지 않거나, 완료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파악 하려고 시도를 할 것이고 이것에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완료’를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완료가 됐다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완료하기’는 엄청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술을 하나만 뚝 떨어뜨려 놓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엄청난 ‘완료되지 않은’, 혹은 ‘처리중’인 사건사고들을 가지고 있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 지부터 내일 입을 옷, 지인과의 약속 장소, 납부해야 할 공과금 등 일상 속 다반사는 물론이고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을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완료하기’를 기술로써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삶의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스웨덴식 데스 클리닉은 삶의 ‘완료하기’
후회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간병인 브로니 웨어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5가지로 요약했다. 그러나 필자는 5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딱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완료’ 하지 않은 채 계속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죽을 고비를 넘기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꼭 본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을 경험했다면 한동안은 각별하게 하루를 살게 된다.
살면서 완료되지 않은 것들은 완료해 나가는 것. 그것이 주는 청명한 내일은 온전히 내 삶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아파 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겪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장례 절차에 대한 이야기로 기록하였다. 또 다른 인사이트가 될 것 것이다.